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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으로 데려가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명료하게 떠오른 단 하나의 명제이다. 인류의끝없는 이주의 역사와 삶의 원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주제의 연장선상에있으면서도, 세월을 겪은 그림은 좀 더 피부에 밀착된 느낌을 보여 주게 된다. 수없이 많은 낯선경유지와 목적지들을 향해 뻗어 나간 길 위를 걷고 있는 자의 순간. 흔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인생’의 은유.

삶과 작업의 부단한 과정을 겪어내면서 오롯이 분명해지는 것은 '정처 없는' 순례자이자 방랑객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매일의 루틴을 일상적으로 살아낸다고 생각하지만 순간순간 침투하는 예견할 수 없는 사건들은 시간의 결을 흐트러뜨리며, 선택의 순간에 어떤 곳으로 향하게 될지 부스러기만한 단서들로 가늠해 볼 뿐이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우리를 이끌고 때로는 짓누르는,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갖게 한다.

그래서 삶의 예측 불가능성과 불가해감은 고스란히 작업에 반영된다. 작품 <모든 곳으로 데려가는>은 매우 단순하게 인생의 은유를 표현한 그림이다. 무거운 걸음을 걸어온 여행자는 다음 장소로 데려가는 입구 앞에 와 있으며, 이 여행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곳으로 데려가는 (무엇)"에서 무엇은 특정되지 않는다. 곧 철거되어 사라질 낡은 집에는 정거장, 역, 기지, 검문소, 배, 우주선, 기억의 통로, 무의식, 현세와 내세의 경계, 웜홀, 평행우주로 통하는 입구 같은 그 어떤 상징을 대입해 보아도 무방하다. 문학적이고 공상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엇’을 다채롭게 채워 나가는 것은 언제나 그림을 읽는 관람자의 몫일 것이다.

​-이지연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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