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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Eunhee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아래서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의 의식 속에 욕망이 뿌리 깊이 작용한 결과이다. 한 인간이 속해있는 문명으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통제는 개인의 욕망을 소비라는 형태로 변형시킨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수많은 외적 자극을 만들어내어 우리를 끊임없이 욕망에 사로잡히게 한다. 소비에 의한 만족은 권태로 그리고 결핍의 상태로 되돌린다. 욕망이라는 중독의 텅빈 연쇄작용은 결국 인간을 원초적인 결여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 놓인 불완전한 주체는 완전함을 향해 변태하고자 하며 이은희는 소비적 대중문화에 스며든 우리들의 모습을 변태동물로 빗대어 대면시키고자 한다.


변태동물의 작가적 의미는 진정한 모습을 잃고 외부의 시선에 따라 형태를 위장하고 치장한 동물들을 뜻한다. 작품 속 불분명한 정체의 유기체들은 대중을 상징하는 꽃들의 시선에 반응하고 그 자극에 종속된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 혹은 식물들이 상호작용하여 변태되는 과정은 사회로부터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현대인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작가는 밴드왜건 시리즈(Bandwagon Series)에서 이와 같은 사회에 의한 은밀한 억압을 반영한다.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란 매스 미디어가 제공하는 의견이나 취향이 사회 다수의 의견이나 취향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대중은 이러한 큰 흐름에 거역하지 못하는 경향을 뜻하는 말이다. 대중매체의 발달과 정보의 손쉬운 공유가 다양한 자극원이 되고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 종속시킨다. 인간의 주체 의식이 흔들릴 정도의 위협은 작가에게는 위태로운 것이며 내뱉고 싶은 영원한 이야깃거리이다.
화면을 이루는 특징적인 요소로는 강렬한 색의 대비, 패턴의 활용 그리고 대칭적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동양화 특유의 평면적인 원색이 주는 강렬한 자극은 더 큰 자극을 갈망하는 욕망의 성질과 닮았다. 전통기법에 멈추지 않고 화면에 가한 반짝이는 오브제는 얕은 무게감으로 화려함 뒤에 허무한 감성을 드러낸다. 이는 정상적이지 못한 변태동물에게 오히려 활발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패턴이 가진 디자인적 요소는 화면 안에 긴장감과 리듬감을 조절하며 더불어 등장하는 액자 구도는 화면 안에서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에 통일성을 유지한다. 이은희만의 동양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변태동물은 마치 전래동화나 민화에 등장할 법한 상상의 동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근작에서는 거울로 비춰보는 듯한 대칭 이미지를 통해 감정이나 형상을 극대화하여 드러내거나 반대로 숨길 수 있는 장치로 사용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변형된 유기체를 통해 두 감정 사이에서의 갈등을 암유하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반성과 성찰 대신 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의 욕망을 대상과 일치시키는 과정을 완벽한 세계로 가는 방법으로 오인한다. 작가가 표현하는 샴의 형태를 띈 변태동물은 주체의식을 상실한 맹목적인 현대인들의 자기검증을 위한 예술적 승화이다.


이은희는 타인의 시선에 의한 욕망에 중독된 현대인의 세태를 작가만의 상상의 동물로 이야기한다. 문명인의 삶을 선택한 현대인들은 주변의 시선과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보다는 다수의 정해진 관념의 틀에 맞춰지고 변형되는 과정은 변태동물로 희화화된다. 작가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욕망의 해방과 개인의 소외라는 이중적인 현상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한다. 욕망과 결부되어 형태변화를 거친 유기체를 통해 본인의 삶이 내면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욕망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관람객 스스로의 몫이다.

평론 김미향

 

 

작가약력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덕성여자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5 - ‘The Ecstatic Chaos’ 롯데백화점 본점, 초대전, 서울
2013 - ‘초라한 껍데기 위에 펼쳐진 욕망’, 갤러리 도스 ‘중독-일상에 스며들다’ 기획공모 선정, 서울

2010 - '황홀한 혼돈' , 더 샘 갤러리, 초대전, 서울 

2009 - '가벼운 중독' , 화봉 갤러리, 초대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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