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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감춰져 있던 불안과 우울의 정서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하여

 이화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숲을 주제로 하여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 여러 회화 작업들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연의 숲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감정, 특별히 고독, 소외, 불안 등 멜랑콜리의 분위기와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작업에서는 흔히 숲이라고 말할 때 상상하게 되는 전형적 숲의 모습, 예를 들면 푸르고 울창한 숲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감각하게 된 정서와 관련된 다양한 서사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했기 때문인지 숲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취합하여 이것들이 서로 겹쳐지도록 하거나 낯선 방식으로 병치되어 놓여있게 함으로써 숲이라는 공간 안에 비현실적이고 낯선 장면이 표출되도록 만들고 이로부터 불안 혹은 이로부터 기인한 우울의 정서가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과 자연 속 동식물의 형상이 놓여져 있는 상황을 공간적으로 왜곡시키거나 인간이 마치 산과 숲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여러 가지 상상적 상황들을 변형된 형상을 특징적으로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숲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보게 되는 나무가 우거진 숲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 너머로부터 인간 내면과 연결된 감각으로만 감지될 수 있는 세계, 특별히 인간 내면의 그늘진 영역과 같은 부분들이기에 숲 속에 감춰져 있는 세계처럼 인간이 상상하고 감각하게 될 때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는 숲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나무가 우거진 숲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보다는 화면 전체를 저채도 저명도의 색감을 유지하면서 음습하고 깊은 산속에 감춰져 있는 은밀한 세계를 일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려는 것처럼 표현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화면에는 나무와 풀잎의 형태나 색채가 일정 부분 남아있는 것같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마치 그림자 혹은 보색의 잔영만을 남겨 놓고자 한 것처럼 무채색에 가까운 저채도의 색들만이 다양한 변조를 보여주기도 하고 일부 형상은 산과 숲의 형상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형상들은 자연 그 자체를 그려낸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를 형상적 세계로 그대로 번안하여 가져와서 그것을 산과 숲의 형상 내부에 배태되어 있는 어떤 것처럼 표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가 상상적 세계와 서로 혼성적으로 겹쳐져 있는 것 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그려낸 것들이 일상적 공간, 원근법적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도록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 가운데 세상과 접촉하고 인지하게 될 때 형성될 수 있는 감각의 겹, 그 비현실적 공간의 레이어 속에 순차적으로 겹쳐져 보이도록 하고 이를 통해 세계 혹은 사물의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을 보면 마치 꿈 속처럼 선형적 시간은 풀어헤쳐지고 공간마저 비현실적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그곳에 드러나 있는 왜곡된 인체의 형상과 함께 척박한 산과 숲의 공간 가운데 왜곡되고 변형된 형상의 식물들과 괴기스런 형상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상황은 무엇인가 매우 낯설고 불편한 느낌, 불안의 정서를 전달해 주고 있음을 감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산과 숲의 형상과 그것의 궤적으로 드러나 있는 변형된 인간의 이미지는 그것 역시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시각적 형상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여러 분위기들을 근거로 하여 단지 감각에 의존하여 판단하게 된다면 작가가 그려낸 인간과 자연의 형상에 비춰진 것들이란 결국 인간 내면에 감춰져 있던 인간의 내적 모습이자 인간의 정서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작업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산비탈을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인간의 모습은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인 인간 존재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간 주변의 저채도, 저명도의 색채를 통해 표현된 식물과 동물의 형상을 보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는 이미지 주변 상황은 강한 긴장감이 생성됨으로 인해 이로부터 무언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될 것 같은 미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려진 이 모든 것들은 이야기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악몽과 같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꿈 같은 미지의 사건을 구성하게 되는 작가가 감각하게 된 독특한 정서를 구축하고 있는 서사에서 그 파편 중 일부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이처럼 꿈 속의 한 장면과 같은 비현실적 세계를 자연 속 숲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을 작업 가운데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 세계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일상 가운데 눈앞에서 경험하게 되었던 이 세계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심지어 불안의 정서를 야기시키는 것으로 느껴졌었기에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보다는 그것의 이면에 있음직한 영역들을 상상적으로 그려내는 행위를 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시각을 점검하고자 했던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이 자연에서 멀리서 숲을 바라볼 때 외부에 드러나 있는 것들만을 보게 되기 쉽지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곳에는 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존재할 것이기에 그 숲 속의 존재들 사이에 일어나게 될 미지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숲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내면 세계와 정서적 상황을 투사함으로써 이로부터 자신을, 그리고 인간과 세계를 직시할 수 있는 장치이자 심리적 기제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이로부터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실존적 존재로서 외부 세계를 접하게 될 때 지속적으로 느끼게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예측 불가능한 불안 정서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그려낸 이 숲 속 공간으로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을 초대함으로써 관객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감춰져 있을 수 있는 불안의 정서를 찾아내고 이를 마주할 수 있는 법을 함께 찾아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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